위기의 한국 게임산업
국내 게임산업이 위기에 빠졌다.
게임산업은 정부의 큰 도움없이
자생적으로 성장한 몇 안 되는 산업중 하나다.
그러나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 8년동안
게임산업은 오히려 퇴보한 상황이다.
정부의 규제 일변도 정책과 열악한 근무 환경 등으로
유능한 인재들이 업계를 떠나고 있다.
과연 해법은 무엇일까.
위기의 한국 게임산업
국내 게임산업이 위기에 빠졌다.
게임산업은 정부의 큰 도움없이
자생적으로 성장한 몇 안 되는 산업중 하나다.
그러나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 8년동안
게임산업은 오히려 퇴보한 상황이다.
정부의 규제 일변도 정책과 열악한 근무 환경 등으로
유능한 인재들이 업계를 떠나고 있다.
과연 해법은 무엇일까.
Chapter 2

오늘도 야근…열악한 근무환경에 우는 청춘들

원태영 기자 won@sisajournal-e.com

한 중소 게임개발사에 근무하는 김영민씨(가명·29)는 거의 매일 야근을 하고 있다. 업무는 보통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마무리된다. 업데이트 일정이라도 있는 날에는 새벽 1시가 넘어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김씨는 “게임이 좋아서 이쪽 업계에 뛰어들었지만, 고된 업무로 인해 정작 게임할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내 게임업계의 근로시간은 가히 살인적이다. 게임업계에서 야근은 일상이다. 대형 게임업체 사옥에는 대부분 수면실과 샤워실이 마련돼 있다. 일부 업체들은 직원들에게 컵라면과 커피를 무제한으로 제공하기도 한다. 직원 복지 차원에서 보자면 좋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만큼 야근이 많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게임업체에 근무하는 개발자들은 회사 규모와 상관없이 대부분 고된 업무에 시달린다. 게임의 경우, 실시간으로 유저들과 피드백을 주고받아야 하기에 문제가 생기면 즉각적인 수정이 필요하다. 특히 대규모 업데이트 일정이라도 잡히면, 개발자들은 집에 가는 것을 아예 포기하고 회사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도 한다. 게임업체가 밀집해 있는 구로와 판교에는 ‘등대’라 불리는 업체들이 있다. 자정을 넘긴 시간에도 퇴근하지 못한 사람들이 남아 사무실 불을 밝히면서 주변을 환하게 비춘다는 자조(自嘲) 섞인 별명이다.

현재 한국의 법정 근로시간은 주당 40시간이다. 이외에 주중 12시간, 주말 16시간을 추가로 일할 수 있다. 그러나 법정 근로시간을 지키는 게임업체는 많지 않다. 주당 100시간을 훌쩍 넘기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건강에 적신호가 오는 경우도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개발자는 “개발업무를 1~2년 하다 보면 몸이 망가지는 것을 느낀다”며 “실제로 퇴직하는 개발자들 중에는 자기 몸에 이상을 느껴 그만두는 이들이 상당수에 달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크런치 모드’라 불리는 집중 근무제도가 문제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크런치 모드는 게임 출시 전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실시하는 집중 근무 형태를 가리키는 업계 용어다. 특히 개발 주기가 짧은 모바일게임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크런치 모드가 더욱 자주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크런치 모드가 무분별하게 사용된다는 점이다. 현재 대다수 업체들은 크런치 모드라는 명분하에 직원들에게 야근을 강요하고 있는 상황이다.

2017 게임산업종사자 실태조사 설문조사
  • 조사 기간2017년 3월 21일 ~ 4월 26일 (5주간)
  • 조사 대상620명
  • 설문 주관 기관구로구근로자복지센터, 게임개발자연대 , 노동시간센터, 노동자의미래, 정의당 IT 노동자 노동상담센터 디버그,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지난 1년간 크런치 모드가 있었나? 예 84.2%, 아니오 25.8% / 1년 중 크런치 경험일 비중 1~14일 19.8%, 15~30일 21%, 31~60일 21.9%, 61~90일 13.8%, 90일 초과 23.5%
2017 게임산업종사자 실태조사 설문조사
  • 조사 기간2017년 3월 21일 ~ 4월 26일 (5주간)
  • 조사 대상620명
  • 설문 주관 기관구로구근로자복지센터, 게임개발자연대 , 노동시간센터, 노동자의미래, 정의당 IT 노동자 노동상담센터 디버그,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지난 1년간 크런치 모드가 있었나? 예 84.2%, 아니오 25.8%
1년 중 크런치 경험일 비중 1~14일 19.8%, 15~30일 21%, 31~60일 21.9%, 61~90일 13.8%, 90일 초과 23.5%

그렇다면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개발자들의 처우는 어떨까. 일부 대형 게임업체들을 제외하곤 초임연봉이 2000만원 중후반대를 넘기기 어렵다. 이마저도 대다수 업체들이 포괄임금제를 적용해 야근 수당을 따로 받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포괄임금제란 일정 범위 내의 추가근로 시간을 추가근로 여부와 관계없이 연봉에 포함시켜 계약하는 것을 말한다. 포괄임금제 역시 기존 계약을 넘어선 추가근로에 대해서는 수당을 지급하도록 돼 있지만, 이를 지키는 업체는 많지 않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부 개발자들의 경우, 전체 근로시간을 다 계산해 보면 법정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김환민 게임개발자연대 사무국장 인터뷰 / 촬영·편집 = 강유진

게임업계에는 현재 노조가 전무하다. 개발자들의 열악한 상황을 대변해 줄 만한 곳이 없는 셈이다. 그나마 2013년 개발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게임개발자연대’가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김환민 게임개발자연대 사무국장은 “그동안 정치권이나 정부가 게임을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봤을 뿐, 그 안에 존재하는 열악한 업무환경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며 “국내 게임업계의 성공신화 뒤에는 수많은 개발자들의 희생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현재 업계에서는 ‘직원을 갈아 게임을 만든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개발자를 혹사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개발자들의 경우, 고용 안정성도 상당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프로젝트 팀 단위로 개발이 진행되기 때문에 중간에 프로젝트가 중단되면 회사를 떠나야 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최근엔 게임시장이 PC온라인게임에서 모바일게임 위주로 재편되면서 개발 기간이 점차 짧아지고 있다. 김 사무국장은 “과거 온라인게임의 경우, 3~4년 정도 개발 기간이 있어서 어느 정도 고용이 보장됐지만, 모바일게임의 경우 짧게는 한두 달 만에 프로젝트가 중단돼 회사를 떠나야 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은 게임업체에 근무하는 비(非)개발직군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국내 게임업체에서 게임운영 업무를 맡고 있는 김민정씨(가명·26)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시즌만 되면 야근할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진다”고 말했다. 게임업계의 성수기라고 할 수 있는 방학 시즌에 유저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게임에 대한 불만사항 및 개선사항 문의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는 “방학기간 중 대규모 업데이트가 잡힌 기간에는 열흘 동안 새벽 1시가 넘어서야 겨우 퇴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홍보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아무개씨도 “새로운 게임이 출시되면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며 “게임업계의 경우, 1인 미디어도 상당수 포진해 있기에 일일이 대응하기도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일주일 평균 노동시간 비중 40시간이하 20.8%, 40~18시간 이하 23.7%, 38~52시간 이하 20.8% 52~60시간 이하 23.9%, 60시간 초과 10.9%/ 크런치 모드 기간 일일 노동시간 비중 9~10시간 5.8%, 11~12시간 34.1%, 13~14시간 25.9%, 15~16시간 14.4%, 17시간 이상 19.7%
일주일 평균 노동시간 비중 40시간이하 20.8%, 40~18시간 이하 23.7%, 38~52시간 이하 20.8% 52~60시간 이하 23.9%, 60시간 초과 10.9%
크런치 모드 기간 일일 노동시간 비중 9~10시간 5.8%, 11~12시간 34.1%, 13~14시간 25.9%, 15~16시간 14.4%, 17시간 이상 19.7%

또 비개발직군의 경우, 몇몇 업체들을 제외하곤 개발직군에 비해 낮은 대우와 보수를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러한 현상은 운영직군에서 두드러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아직까지 운영업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곳은 많지 않다”며 “임금체계 역시 개발직군에 비해 턱없이 낮아 전문적으로 인력을 키우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와 정치권이 게임업계에 좀 더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고 있다. 특히 경제적인 부분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존재하고 있는 열악한 개발 환경 등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윤문용 ICT소비자정책연구원 정책국장 인터뷰 / 촬영·편집 = 강유진

윤문용 녹색소비자연대 ICT소비자정책연구원 정책국장은 “고용노동부가 게임업계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자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크런치 모드의 경우, 어쩔수 없는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열악한 노동환경이 중견기업, 대기업 상관없이 모두 발생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특별관리감독과 함께 업체들도 스스로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 밤을 새가며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사무국장은 “크런치 모드를 막기 위해선 법제도 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가 먼저 할 일은 게임업계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대한 정확한 조사다. 현재는 데이터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임금체불이나 불합리한 크런치모드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이를 통해 법제도 등의 도입을 고민해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제 9년차에 접어든 게임개발자 김민수(32·가명)씨는 “8개월동안 집에 제대로 들어가지 못한 적도 있다. 야근의 경우, 시작만 있지 끝은 없다”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두려움이 항상 존재한다”고 밝혔다. 그는 “게임업계의 과도한 근무 환경은 단순히 기업만 바뀐다고 될 것이 아니다”며 “정부 차원에서도 어느정도의 개입이 필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